예술의 재료의 노동의 예술

이수연(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권용주는 우리가 딛고 선 현실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작가는 다큐멘터리 제작, 공공조각, 전시설치 아르바이트 등을 통하여 얻은 기술들을 이용하여 작품을 생산하고 흔히 주변 일상에서얻을 수 있는 오브제들을 활용하여 작품을 설치 한다. 노동과 작업의 교환을 통하여 생활과 일의 조화를 모색하고 노동이 현대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볼수있는기회를만들어내는것이다.작가세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인 미술 작업과 생활의 병치는 일이 곧 자신을 대변하는 현재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인 고민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작가는 2008년 이후 작가와 직업인으로서의두 가지 모습을 분리하는 것을 멈추고 작업 속에 일상을 넘어선 생활을 병치하기 시작하였다.그러한 과정에서 작업에 사용된 재료와 매체가곧 작업의 내용이 되었다. 2009년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전시한 <우리 정상에서 만나요>는 시멘트로 만든 백두산의 모형과 수집한 사진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백두산이라는 대상을 통하여 시멘트로 제작된 젊은 세대의노동과 개발경제가 포용하는 오래된 세대의 깊은 애국심과 같은 복합적인 상황들이 제시된다.재료가 곧 이야기가 되는 상황은 인사미술공간 등에서 선보인 <부표>(2010~ )시리즈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를 하면서 버려지는 공사 물품들- 포장재, 비닐천, 페인트통, MDF 조각- 등을 재료로 사용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과정에서 배운 기술과 방법들을 응용하여 작품을 구성하였다. 특히 이러한 물건 더미들은 갤러리 바닥에서부터 천정까지 쌓여서 거대한 설치물을 이루는데, 이 구조물의 아슬아슬한 균형은 노동과 생활 사이의 균형을 연상시킨다.

아트 스페이스 풀에서 선보인 <녹는 점>(2013)은 작가가 계속해서 작업에 이용해왔지만 더 이상 함께하고 싶지 않은 오브제들을 태워서 전시하였다. <바르게 살자>(2012)는 70년대 공공조각에서 본 듯한 문구인 ‘바르게 살자’가 굳건하게 돌에 새겨진 형태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채색된 스티로폼을 이용하여 덧없음과 가벼움으로 상황을 희화화한다.

재료가 곧 작업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독특한 방식은 2014년 일련의 프로젝트들을 통해 노동이 결합된 형태로 진화하였다. 작가는 한층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전시장서 생활의 결과물을 쏟아내는 방법을 고민하였다. 이에는 작가가 익숙하게 사용해온 재료의 이용뿐만 아니라 작가의 노동력을 예술의 영역으로 치환하려는 노력까지 포함된다.

권용주는 두산 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열린 "본업: 생활하는 예술가"(2014)전에서 영상 스크린이자 칸막이의 기능을 하는 만능벽 등으로 전시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데 이어서, 2014년 제 4회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에서는 전시 디자이너로서 전시가 구현된 김중업 박물관의 역사적인 공간을 전시장에 재배치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전시장 안에서 작가의 노동력은 노동인 동시에 예술적인 행위로 규정되지만 실제로 그 두 가지를 온전하게 합하거나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일반적으로 노동은 예술은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의 결과물이 예술작업으로 나타나지만, 권용주의 작업에서는 오히려 예술이 노동을 위하여 존재하는 역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노동이 곧 작업이 되는 상황은 작가 자신의 작업으로부터 눈을 돌려서 보편적인 노동의 예술로의 변화 가능성들을 살펴보도록 하였다.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 <연경>(2013~ )은 태국의 방직공장의 일상을 촬영한 영상이다. 이 영상에는 6-70년대 방직공장에서 여공으로 일을 하였던 작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덧입혀져 있다. 오래된 어머니의 기억과 태국 공장의 노동자들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노동의 조건들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는 개인의 삶과 소박한 행복을 함께 보여준다. 작가는 2014년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연경>을 다채널 비디오와 설치로 전시하였으며, 좀 더 확장된 경험으로서의 노동의 가능성과 삶의 관계를 실험하고 있다.

할 포스터(Hal Foster)는 논문 「기록의 충동(An Archival Impulse)」에서 현대미술의 특징적인 징후 중 하나로 작가들이 기존에 존재하는현실의 오브제들과 정보들로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점을 꼽았다. 작가들은 일상의 오브제가 갖고 있는 의미를 이용하여 전시장에서 새로운 정보를 생성하고 동시대의 실제적인 경험들을 예술 작업에 쏟아 넣는다. 권용주 작가는 미술사 속에서 여전히 유의미하게 작동 하는 일상적 오브제의 기능을 활용하되, 현재 세대들의 노동의 기억과 경험을 담아내는 시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 미술의 향방을 가늠하게 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